루덴도르프 총공세 읽다가

by 곰선생  /  on Jul 07, 2012 13:22

20세기 결전 30장면, 루덴도르프 총공세 읽다가 막힌 곰.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전 선언과 '치머만 전보 Zimmerman Telegram' 사건 이후 미국은 대독일 선전포고를 했다.
1917년 4월이었다.' 에서 치머만 전보가 뭔지 몰라서였다.

찾았다.
보았다.
알았다.

http://ko.wikipedia.org/wiki/%EC%B9%98%EB%A8%B8%EB%A7%8C_%EC%A0%84%EB%B3%B4

치머만 전보(Zimmermann Telegram)는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1월 16일, 독일 제국의 외무 장관인 아르투르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 대사에게 보낸 비밀 전보문이다. 멕시코 정부에게 미국에 대항하는 동맹을 제안하라는 지시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영국이 이 전보 내용을 감청해 암호 해독반인 40호실에서 해독하였다. 이 전보 내용은 미국의 독일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게 하여, 미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치머만의 전보에는 독일이 미국과의 중립 유지가 불가능하다면 멕시코와 동맹을 맺으라는 지시가 담겨 있었다.

멕시코에게 함께 일본을 동맹에 끌어들여 미국을 공격하자는 제안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대가로 재정적 지원과 함께

미국에 빼앗겼던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를 되돌려 주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멕시코는 옛 땅을 회복할 가능성을 따져 본 후에 다음과 같은 이유로 현실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멕시코가 옛 주를 돌려받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이며 미국과의 전쟁은 불가피할 것이다.
멕시코는 국경 지대의 수많은 앵글로계 주민을 수용할 만한 시설이 없다.
독일은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무기를 제공할 능력이 없다.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이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직후인 4월 14일 치머만의 제안을 거부했다

 

http://en.wikipedia.org/wiki/Zimmermann_Telegram
The Zimmermann Telegram was intercepted and decoded by the British cryptographers of Room 40. The Telegram Zimmermann's

message was:

FROM 2nd from London # 5747.
"We intend to begin on the first of February unrestricted submarine warfare. We shall endeavor in spite of this to keep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neutral. In the event of this not succeeding, we make Mexico a proposal of alliance on the following basis: make war together,

make peace together, generous financial support and an understanding on our part that Mexico is to reconquer the lost territory in

Texas, New Mexico, and Arizona. The settlement in detail is left to you. You will inform the President of the above most secretly as soon

as the outbreak of war with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s certain and add the suggestion that he should, on his own initiative, invite

Japan to immediate adherence and at the same time mediate between Japan and ourselves. Please call the President's attention to the

fact that the ruthless employment of our submarines now offers the prospect of compelling England in a few months to make peace."

Signed, ZIMMERMANN

 

http://ko.wikipedia.org/wiki/%EC%97%90%EB%A6%AC%ED%9E%88_%EB%A3%A8%EB%8D%B4%EB%8F%84%EB%A5%B4%ED%94%84

1916년 8월, 독일군 참모총장 에리히 폰 팔켄하인이 베르됭 전투 실패로 사임하고,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신임 참모총장이 되었다.

루덴도르프는 모든 명령은 두 사람이 내린다는 조건으로 참모차장(Generalquartiermeister)에 임명되어 독일의 전쟁 수행을 이끌게 된다.

그들은 함께 이른바 3차 최고 지휘부(Third Supreme Command)를 형성했다.

1916년 가을 이후,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는 사실상 독일을 지배하는 군사 독재자가 되었다.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는

힌덴부르크 프로그램과 애국 봉사 법안(독일어: Vaternische Hilfsdient)으로 독일 전체를 통제하려 했으며, 황제도 이들에게 모든 주요 사안을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루덴도르프의 직위는 참모차장(Generalquartiermeister)에 불과했지만,

힌덴부르크를 제치고 국사 및 정치 부분에 대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제국 정부 각료를 루덴도르프가 경질하는 일도 있었다.

루덴도르프는 영국의 해상봉쇄를 깨기 위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입안했는데, 결국 이 작전은 1917년 3월,

미국이 대독 선전포고를 하게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루덴도르프는 승리한 독일 제국에 의해 동유럽에서 거대한 영토를

병합하고 식민지화할 것을 계획했으며, 폴란드 국경 강탈(Polish Border Strip)의 주요 후원자이기도 했다.

러시아가 1917년에 2월 혁명과 10월 혁명으로 전쟁에서 빠지자 루덴도르프는 독일과 새로운 볼세비키 지도부와 정전 회담에 참가했다.

수많은 협의를 거친 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1918년 3월에 체결했다. 그 해 봄, 루덴도르프는 서부 전선에서

미하엘 작전(Operation Michael), 게오르게테 작전(Operation Georgette), 블뤼허 작전 등 미국군이 전선에 배치되기 전에 전쟁을

끝내려고 독일의 마지막 춘계 공세를 계획하고 지휘했다. 1918년 독일군의 춘계 공세는 전쟁을 마무리할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이 붕괴하면서 루덴도르프의 전시 지도력은 점차 빛을 잃어갔다.

공세는 3월 21일에 시작되었다. 독일군은 공세 초기에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점차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2차 마른 전투(1918년 7월 15일 ~ 8월 7일)에서 불행히도 독일군은 미군이 증원된 연합군의 진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1918년 8월 8일, 루덴도르프는 전쟁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결론냈다. 그는 회고록에서 8월 8일을 "독일군 암흑의 날"이라고 썼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휴전협상을 진행할 동안 현 위치를 사수할 것을 명령했다. 루덴도르프는 때때로 눈물을 보이며

정신 공황 상태를 보였고, 그를 걱정하던 참모들은 정신과 전문의(psychiatrist)를 부르기도 했다.

 

중략

1928년 이후 은퇴한 루덴도르프는 나치스와 멀어졌다. 그는 더 이상 히틀러와 만나지 않았으며, 히틀러를 교활한 정치꾼politician 중의

한 명으로, 그리고 아마 최악으로 간주했다. 그는 히틀러가 독일 수상으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힌덴부르크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 히틀러를 제국 수상으로 임명함으로써, 대통령께서는 조국 독일을 가장 위험한 시대로 넘겼습니다. 저는 대통령께 이 악마가

우리의 조국을 심연으로 빠트리고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줄 것이라고 예언하는 바입니다. 미래 세대는 대통령님이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저주할 것입니다. ”

아직까지 이 전보의 원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1차 사료(first sources) 중 하나는 나치 시대에 폴란드 총독과

무임소장관(Reichsminister)을 역임한 한스 프랑크가 작성한 것이었다. 한스 프랑크는 전범으로 처형당하기 직전 쓴 회고록에서

이 전보에 대해 썼다

. 아마 더 신뢰할 수 있는 소스로는 루덴도르프와 가까운 동료였던 빌헬름 브로이커(Wilhelm Breuker) 대위가 1953년에 쓴

회고록일 것이다. 그는 이 회고록에서 전보의 존재에 대해서 언급했다.

말년에 루덴도르프는 몇 권의 책을 쓰고, 1925년에 창설한 극우 정치 단체인 타넨베르크 연맹(Tannenbergbund)를 이끌면서

두 번째 부인 마틸데 폰 켐니츠(1874년 ~ 1966년)과 별거 상태에 들어갔다. 루덴도르프는 세계의 문제가 기독교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믿었다. 특히 예수회와 가톨릭, 유대교, 프리메이슨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마틸데와 함께 "신의 지식을 위한 모임(독일어: Bund für Gotteserkenntnis, 영어:

Society for the Knowledge of God)을 만들기도 했다. 이 단체는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뮌헨 봉기 이후 루덴도르프가 히틀러를 멀리하자, 히틀러는 루덴도르프의 지지를 다시 얻기 위해 1935년에

그를 비공식 방문하여 원수(feldmarshal)를 제안했다. 격노한 루덴도르프는

“ 원수는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

고 버럭 소리질렀다.

 

「만약에」 군사역사편에서 읽은 토이토부르거 전투가 생각난다. 
……. (' ')
콜렌소 전투 보다가 베르됭 전투로 건너뛰었는데... 다시 콜렌소 전투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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